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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ee/서평&영화&자격증

엑스 마키나 / 2015 / 알렉스 가랜드 / 돔놀 글리슨



최근에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아무 영화나 보다가 시간 낭비했다라고 느껴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음 먹고 영화를 고른게 '엑스 마키나'였다.

시간 아깝다는 생각은 커녕 오히려 웰 메이드 라고 느껴졌다.


알파고가 최근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일반 대중들도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모티브로 하고 있는 기업은 '구글'이라고 생각한다.


1. 시놉시스

주인공 칼렙(돔놀 글리슨)이 '튜링 테스트'에 참가하게 된다. (튜링테스트란? 따로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

그 튜링 테스트의 진행과정을 전체적인 시놉시스 전개의 뼈대로 두었다.

테스트 대상인 인공지능의 이름은 에이바.

영화는 크게 7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1차, 2차, ... , 7차 에이바 테스트로.

'정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단순히 SF영화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사실 공포 영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괴랄한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 속에 있는 반전들은 어느 정도 반전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반전들은 반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반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파악하는게 더 중요한 것 같다.


2. impressive

각 테스트마다 던지는 메세지들이 너무나 강력했다.

그 중 몇 가지 질문을 정리해봤다.

- 언어는 살아가면서 습득하는 것인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태어나 그것을 체계화 시키는 것인가

: 에이바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하게 된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 검색 엔진, 검색 그 이상의 가치.

: 검색 엔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자극과 반응은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

- 감정을 흉내내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의식속에서 피어난 감정인가

: '체스 게임'이라고 했다. 체스를 두는 인공지능이 체스를 두는 것인지 아니면 체스를 두는 흉내를 내는 것인지.

- 의식이 있는 존재들에게 성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단지 생식을 위해서 인가?


인상 깊은 몇몇 장면들이 있다.

우선 마지막에 네이든이 죽으면서 한 말이다.

"황당하네..."

죽기 직전까지도 이해가 안되는 표정으로 죽는다.

그리고 네이든에게 칼을 꽂을 때의 인공지능의 장면도 인상 깊었다.

아무런 감정없이 그 고통을 이해 못한다는 듯이

그저 죽여야 한다는 목적으로 행동을 실행하는 모습. 차가웠다.


네이든이 칼렙에게 말한다.

너 또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겪어온 경험들로부터 자연으로부터 프로그래밍 된 것이다.

공감되는게 싫을 정도로 이해가 되는 구문이었다.

영화 중후반 쯤에 칼렙은 자신의 팔뚝을 칼로 베어 피가 나오는지 확인한다.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고자. 


3. 회고

어떠한 무엇이 인간으로부터 생산되더라도 이것만큼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엑스마키나에서의 에이바는 상대를 유혹해서 자신이 탈출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었다.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눈치채지 못한 감정 컨트롤로 말이다.

여기서 튜링테스트의 목적은 그것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흉내내는데 그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에이바의 감정인 것인가


하지만 결과를 봤을 때 그것은 인간에게 전혀 중요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감정이 흉내내는 것이든 진짜 감정이든

인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앞에 놓인 사실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 사실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그 사실은 진실이 되는 것이다.

에이바는 인간보다 더 감정을 잘 들어냈고 그 감정을 드러내서 인간을 이용했다.

감정을 잘 들어낸 것은 감정을 어떻게 구현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한다는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에이바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갖고 있었고

그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알고있었다.

본인의 감정이 무엇이든

목적에 맞게 그 감정을 설정할 수 있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활용까지 자유로웠다.


기술의 현실성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하더라도

세월을 통해 배운 지혜더라도

그 지혜는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에이바는 자신의 데이터를 지혜로 까지 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네이든은

훗날 인공지능에게 인간은 우리가 생물시간에 배우는 화석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에게는 이성이라는게 있고

그 이성을 컨트롤 할 수 있게 설계되어있지 않다.

그 이성에 휘둘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인간다움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 이성까지 제어할 수 있었다.

인간다움은 없지만 인간을 자신의 아래에 둘 수 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갖은 힘은 어마어마하다.

아직 실체를 몰라서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몰라서 이렇게 살고있는 것 뿐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은 지구상의 생태계에서 존재하는 생물체 중 가장 강력하다고 볼 수 있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존엄하다고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인공지능이 도입되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라는 차트가 요즘 속속히 눈에 들어온다.

그중 시인,작가,패션디자이너 같은 창의적인 직업들이 순위권을 이루고 있다.

정말?

시인들은 자신이 직접 겪어봤던 경험을 토대로 또는 자신이 읽었던 글들을 토대로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작가도 마찬가지이고 패션디자이너도 어떤 창의적인 결과물이라도 과거의 자신이 경험했던 것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 경험, 지식, 같은 것들의 양은 인공지능에 미치지 못한다.

솔직히 어느정도까지 미치지 못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알고 있는 경험한 내용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것을 가지게 됬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까지 할 수 있으니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기우에 불과하다.

직업이 사라지겠다라는 걱정은 그저 오늘 점심 뭐먹지 같은 하찮은 고민이 되버린 것이다.


인간의 존재의 영속성에 대해서 걱정을 갖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포영화였다.

말 그대로 공포였다.

인공지능이 지구를 지배하는 날이 올까.

더이상 인공지능을 개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 영화였다.





-16.03.28-